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법의 힘을 빌려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최근에 누군가를 고소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비쌌다. 사건을 일임하려면 최소 300만원, 고소장 작성만 맡기려 해도 30~50만원이 필요했다.
30만원에 고소장 작성만 맡길까도 생각해봤지만, 사건을 완전히 수임하지 않은 변호사가 얼마나 성심을 다해 고소장을 작성해줄지 생각해보니, 불안한 마음에 고소장 작성을 맡기기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직접 고소장을 작성했고, 성공적으로 경찰의 기소까지 이끌어냈다.
가장 중요한 팁은 경찰을 일종의 독자로 상정해놓고 경찰이 알아듣기 쉽게, 그리고 수사 노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고소장을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혼자서 셀프 고소장 작성하는 방법
(양식을 다운받아서 쓰시길 추천해요)
1. 경찰청에서 제공하는 표준 양식을 사용하자.
공무원들은 정해진 양식대로 접수되는 문서를 가장 편하게 생각한다. 내 마음대로 임의에 서식에 작성하기 보다는 경찰청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서식을 토대로 필요에 맞춰 양식을 다듬자.
2. 피고소인(상대방)의 상세한 정보는 아는 만큼만 쓰면된다.
상대방의 완벽한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휴대폰번호 등을 아는만큼 기입하되 모르는 부분은 '불상'이라고 적어두어도 충분하다. 범죄사실이 있다면 경찰이 수사를 통해 상대방의 신원을 조회할 것이다.
3. 독자인 경찰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자.
경찰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건을 접할지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사기꾼', '나쁜놈', '폭행범' 이라고 작성해서는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선 상대방의 행위가 어떤 법률에 저촉되는 범죄행위인지 작성해줘야 한다.
예컨대 스토킹범죄라면 스토킹처벌법의 어떤 어떤 조문이 이 사건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조문을 먼저 적어준다. 필요한 경우 구글링해서 찾은 판례의 중요 부분을 발췌해서 기입해준다.
그 뒤에 상대방의 행위가 왜 스토킹처벌법이 규정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사실관계를 법률에 비추어 작성해준다.
마지막으로 법률 조문과 상대방의 범죄행위를 매칭시켜서 상대방에게 스토킹범죄가 성립함을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 해준다.
4. 증거자료를 별지로 작성하자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죄일람표를 만드는 것이다. 시간 순서로 상대방이 저지른 행위와 그것을 증빙하는 자료를 매칭시키는 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경찰이 사실과 증거자료를 한눈에 매칭해서 볼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은 매우 힘든 과정이지만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경찰에게 가장 유용하게 느껴질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제출된 증거보다는 범죄일람표에 따라 순서대로 제출된 증거가 알아보기 쉬울 것임이 당연하다. 경찰이 내가 제출한 증거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도록, 일람표를 반드시 작성해주자.
아마도 이런 과정으로 고소장을 작성하려면 길게는 1~2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고소장을 작성하는데 1주일, 증거자료를 정리해서 범죄일람표를 만드는데 또 1주일이 허비되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상대방의 범죄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는 부분이었고, 애매한 부분에 대해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판례를 기입하는 부분이었다.
사실상 위 부분만 잘 해낸다면, 나머지는 순전히 자료를 정리하는 단순 노동이다.
변호사를 사기에는 조금 애매하지만, 경찰에 사건을 반드시 접수시켜서 입건시키고 싶을 때 조금은 힘들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셀프 고소를 고려해보자.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아주 보람찬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