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 지표는 방 청소 상태이다.
우울하면 방이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외출복이 책상과 의자에 대충 걸쳐져 있고, 책상에는 편의점 음식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방바닥을 걸으면 발바닥에 먼지가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싱크대에는 애매한 양의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다. 좁은 원룸은 더 좁아 보인다.
우울한 기분이 들면 침대에 쓰러진다. 넷플릭스를 보아도 즐겁지 않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음식을 하기 귀찮아서, 편의점까지 가기도 힘들어서 찬장에 남아있는 라면을 꺼내서 생으로 와그작와그작 씹는다. 한 봉지를 거의 다 먹었을 때쯤 후회가 밀려온다. 면들이 뱃속에서 부풀어서 위를 다 채울 것만 같다. 아 또 내 몸을 망치고 말았다.
창 밖에 주홍빛 노을이 비치기 시작하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우울함과 죄책감이 극에 달한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 이 사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기분에 잠식당할 것만 같다.
그 순간 힘을 내서 청소를 시작한다.
옷가지를 옷장에 넣고, 책상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마주한다. 창문 밖으로 베개와 이불의 먼지를 털고, 침대를 정리한다. 방바닥을 걸레질하고 뜨거운 물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접시를 닦는다. 내친김에 서랍을 열어 잠들어 있었던 수건들을 대거 정리한다. 어떻게 분리수거해야 할지 몰라서 방치해 뒀던 폐와이퍼를 의지를 갖고 분해해서 성공적으로 분리수거해 낸다.
쓰레기들을 들고 분리수거장에 나간다. 오늘 처음 마시는 바깥공기다. 이렇게라도 공기를 마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청소를 하는 동안 다시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아직 9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시간 동안 To-do 목록에 있는 일을 몇 가지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5.33평의 방이 조금 더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 집 근처에는 새벽 3시까지 운영하는 엔젤리너스가 있다. 평소에는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간격이 싫어서 잘 가지 않지만,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늦은 밤에는 고요함과 개방감을 함께 전달해 주는 공간으로 변한다. 깨끗해진 방을 뒤로하고 가방을 챙겨서 카페로 간다.
드문드문 앉은 사람들은 무엇을 읽고 쓰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시간에 이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고맙다.
이렇게 또 오늘 하루의 끝자락에서 나의 시간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