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보다 경험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유(feat. 행복의 기원)
우리는 어떨 때 행복을 느낄까?
최근에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다. 철학적인 책일 줄 알았는데 마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처럼 과학(진화론)에 기반한 인문학 서적이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충격적이다.
1.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자. 인류의 전체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문명화된 기간은 아주 짧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원시시대의 조상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여전히 생존과 번식을 최우선으로 삼는 동물에 가깝다.
2. 행복이라고 부르는 여러가지 쾌감은 그것이 저속한 것이든 고귀한 것이든 생존을 위한 유인장치에 불과하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행복하다. 만약 배고플 때 밥을 먹어도 별다른 만족감이 없다면 우리는 굳이 식비를 지출해 가며 밥을 먹지 않을 것이다. 식사가 주는 쾌감이 우리가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도록 밥을 먹게 한다.
이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이성과 만나 살이 닿으면 행복한 이유는 고상한 것이 아니라 그래야 우리가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관계가 쾌감도 주지 못한다면 굳이 '연애'라는 감정소모가 큰 관계를 유지하며 비생산적인 행위를 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행복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유인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질구매 보다 경험구매가 행복에 유리한 이유
행복이라는 유인장치가 작동하는 주요한 일 중에 하나는 ‘사람’이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어서 늘 서로를 필요로 한다. 물론 그것은 고상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서로 모여있어야 포식자로부터 더 안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원시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질 구매는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경험이다. 물건이 나의 정체성을 표현해 줄 때도 있지만 그런 기능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나는 신형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잠시 내보일 수는 있지만 새로운 아이폰이 나와 제품이 구형이 되는 순간 그 기능은 사라진다. 아니, 아이폰이 출시한 지 한두 달만 지나더라도 그 기능은 사라진다.
경험의 구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과 비교해 보자.우리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여행하거나 그게 아니어도 sns를 통하여 부분 동행이라도 구해서 여행을 하곤 한다. 이러한 경험의 구매는 여행하는 그 시간 동안에도 기쁨을 만들어주지만, 함께 여행을 한 집단과 유대를 유지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오랜 기간 그 유대감을 연장해 주는 기능도 있다.
심지어 혼자 하는 여행이더라도 물건보다는 행복감 형성에 유리하다. 여행하는 기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선한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고, 언젠가 같은 여행지에 다녀온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소통의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공통된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친해지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우리 문명의 발전 속도만큼 진화가 빨리 진행되었다면, 물질 구매가 경험 구매보다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맞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할 수 있게 해 준다. 안전한 집, 먹을 것, 입을 것, 좋은 장비 등 물건이 있어야 삶이 윤택해진다.
그에 비해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한 다는 것은 도전이고, 도전은 늘 위험을 수반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유전자는 물건과 돈의 이로움에 덜 행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질이나 돈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실질적 이로움에 비해 행복이 그리 크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