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 1984 속 로맨스 - “사랑해요”
콩닥콩닥 거리는 로맨스가 좋다.
K드라마의 특징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많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로맨스 없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운게 사실이다.
얼마 전 조지오웰의 1984를 다시 읽었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는 책이라,
그 때는 다독하기 급급하던 때여서,
더욱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완독 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도,
사회에 대한 풍자도,
고문의 잔인함도 아닌
로맨스다.
차가운 복도에서 넘어지는 척하며 그녀는 그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자신의 뒤를 쫓는 사상경찰일까하는 두려움과,
아니면 혹시 나처럼 권력에 저항하는 형제단의 일원이 아닐까라는 기대감을 동시에 갖으며 그는 그녀의 쪽지를 열어본다. 미숙한 필체로 크게 적힌 문장 하나.
사랑해요.
사랑해요라는 문장을 본 순간 그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갖을 수 있게 된다.
구내식당의 맛없는 음식도 게걸스레 먹을 수 있었고,
당의 강연이나 교육도 빼먹고 싶다는 충동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계속 살고 싶다는 욕망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사상경찰이 없는 풀 숲에서 그는 줄리아의 부드럽고 따뜻한 허리를 휘감고 가슴과 가슴이 맟닿게 그녀를 돌려세우며 끌어당긴다. 체온과 체온 살결과 살결이 닿는 순간 둘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당이 원하는 무슨 말이든 증언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줄리아가 있었다. 고문을 멈추기 위해 줄리아를 배신하는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깊이 줄리아를 생각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문을 멈추기 위해 거짓말을 할 뿐이었다.
당을 상징하는 오브라이언, 그는 그런 윈스턴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최후에 그가 그에게 빼앗고자 했던 것은 줄리아에 대한 사랑이었다. 고문을 멈추기 위한 거짓말이 아닌 진심으로 줄리아를 배반하길 바랐다.
사람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다르다. 누군가는 산채로 묻히는 것일 수도, 불에 타 죽는 것일 수도, 익사일 수도 있다. 윈스턴에게 극도의 공포는 쥐였다. 윈스턴의 꿈속까지 지켜본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것을 찾아냈다. 거대한 육식동물인 쥐가 그의 눈앞에 가까워지는 순간, 그는 극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선택하고 줄리아를 버렸다. “나 말고! 줄리아! 줄리아한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으니까!”라고 외친 순간 모든 고문은 끝났다.
흥행하는 작품에서 로맨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 우리가 그토록 사랑이야기에 열광하는 건,
때로는 유치하다고 질타당하기도 하지만,
사랑 이야기에만 집착하는 것이 저속한 것 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의 내면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어서는 아닐까?